최근 조선일보가 실명까지 거명하면서 판사 한 명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판사가 법의 상식도 모른다, 차라리 법복을 벗고 시위에 나가라, 이런 판사가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다라고 까지 했다.

왜 이렇게 비난했는지, 이런 비난이 타당한 것인지 내용을 살펴보면, 언론이 사법부, 특히 판사를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주배경은 촛불 집회와 관련된 피고인을 법원이 보석으로 풀어 준 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됐다.
조선일보는 이 과정에서 판사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11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이 구속된 지 50여 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보석을 허가 했던 것이다.

이틀 뒤 조선일보는 보석 결정을 한 판사를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

사회면 일부에 “불법 촛불시위 주동자에 대한 재판을 맡은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잇달아 피고인을 두둔하고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사견을 드러내 물의를 빚고 있다.” 의 내용과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판사가 현행법을 위반한 피고인을 노골적으로 두둔함으로써, 불법 촛불시위대의 법 경시 태도와 수사기관 우롱행위를 조장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위 내용을 인용해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판사는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대책위원회 팀장의 재판에서 익명의 검사를 인용해 판사를 비난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사설을 또 썼다.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라는 제목으로 해당 판사가 법의 상식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이 판사는 일반인도 아는 법의 상식도 모르고 모든 판사가 지켜야 할 법관윤리강령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판사가 아직껏 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 판사는 자신이 그 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 다음날도 조선일보는 사설을 썼다.

재판정의 존엄이 판사 때문에 무너졌다는 내용이다.
“판사가 법정의 존엄을 지킬 각오가 없다면 아무도 법정의 존엄을 지켜주지 않는다. 법정의 존엄이 짓밟히면 판사도 법의 권위도 함께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나 요즘 사법부엔 이런 인과의 고리조차 모르는 판사가 너무 흔한 듯하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해당 판사는 법의 상식도 모르고 법관윤리강령이나 법정의 존엄에도 관심이 없는 자격 미달의 판사인 셈이다.

그러니까 조선일보는 판사가 불법 시위를 두둔했다는 건데, 그 점이 불확실하다.다만 재판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CBS기자가 유일하게 남아서 취재를 했다.
CBS기자는 판사의 발언 내용과 취지가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달랐다고 한다.

쟁점 별로 살펴 보면, 조선일보는 판사가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법에 위헌 가능성도 있다면서 피고인을 두둔했다고 보도했다
“이 판사는 공개법정에서 피고인측이 야간집회 금지의 위헌성을 주장하자 그런 부분은 말이 된다며 동의하기도 했다. 현행법을 이렇게 취급하면서 이 판사는 무엇을 규준으로 재판해왔는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CBS 기자의 말은 다르다.
<인터뷰> 심훈 (CBS 노컷뉴스 기자) : “변론에 대한 어떤 추임새 내지는 그런 어떤 수긍 이런거지 전체적으로 유무죄 판단이나 아니면 위헌법률 심판 제청에 대한 판단이다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더구나 판사는 현행법에 위헌 가능성이 있을 경우 위헌 제청을 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판사가 지난달 첫 공판 때도 촛불시위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 판사는 (안씨가) 구속돼 마음이 아프다. (촛불시위가) 목적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등의 발언을 했었다.”

하지만 재판을 본 CBS기자는 다르다.
“박판사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현명하라는 성경구절을 이용해 목적이 숭고하더라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현명하게 집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지, 꼭 불법으로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피고인 측에 물었다.”

촛불시위의 목적이 숭고하더라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집회를 할 수 없었느냐는 판사의 질문을 놓고, 조선일보는 판사가 촛불시위가 숭고하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피고인이 집회에 또 나가겠다고 했는데도 판사가 보석을 허가했다고 비난도했다.
“문화제 형식의 합법집회에 참여하겠다는 대답은 재범의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한 발언으로 이 같은 대답을 듣고도 보석을 허가한 것은 재판부가 사실상 재범을 방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피고인이 합법집회에 참여하겠다는 발언을 놓고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이나 나아가 재판부가 재범을 방조했다는 비난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 : “형사 피고인 유죄확정 판결 전까지는 죄가 없는 자에 준해 대우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언론이 재판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 원칙을 깰 수 있는 보도를 하는 것은 따라서 지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판사가 방청객의 소란 행위를 막지 않아 법정의 존엄이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방청객들이 증언을 방해하며 소란을 피우는데도 힐끗 쳐다봤을 뿐 제지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이날 안씨가 신청한 보석을 허가했다.”

그러나 CBS 기자는 정반대로 주장이다.
심훈 (CBS 노컷 뉴스 기자) : “한 번 크게 웃은 적이 있어요. 여자분이던가요. 한번 웃은 적 있고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왜 저러나 근데 그게 재판진행에 크게 방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뭐 재판장이 한번 쳐다보고 주위 사람들 쳐다보고 옆에서 왜 그래 말리는 그런 거 있잖아요 하고…”

실제로 박 판사는 첫 공판에서 안씨를 향해 박수를 쳤던 방청객들을 퇴정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논란이 되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한겨레는 조선일보가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법원 내부 전산망 게시판에는 ‘이제 조선일보는 사법부도 자신들의 발 아래 두려하는가?’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김창룡 (인제대 신방과 교수) : “이런 식으로 담당 판사에 대해서 아주 표적으로 겨냥해서 대단히 집중된 비난을 퍼붓는 것은 앞으로 판결에 대한 경고성 보도로 저는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재판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그런 의도마저 보이지 않는가. 조선일보가 이런 식으로 보도하면 마치 사법부 위에 조선일보가 군림하고 있다하는 인상까지 주기 때문에 저는 언론의 횡포가 될 것이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도 지난 2005년 퇴임사를 통해 여론 재판의 우려를 경계했다.

“최근 여론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여 이를 폄하하려는 행동이 자주 생겨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언론은 사법부에 대해서도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자사 입장에 따라서 법정의 권위를 훼손하는 건 아 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현태기자kht1007@naver.com ;